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동북아시아에 존재했던 강력한 해상 강국으로,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하여 건국한 국가입니다. 한국사에서 종종 간과되는 이 국가는 동해와 황해를 잇는 해상 무역로를 장악하고 당나라, 일본, 신라와 활발한 교역을 펼치며 번영했습니다. 본 문서는 발해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해상 강국으로서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 1. 발해의 건국과 해상 강국의 시작
발해는 698년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靺鞨族)을 통합하여 건국한 국가입니다. 고구려가 668년 멸망한 후, 30년간의 혼란기를 거쳐 탄생한 발해는 동아시아 북방과 만주, 연해주 일대를 지배하며 중요한 해상 교역로를 확보했습니다.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당나라와 한반도의 신라가 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발해는 제3의 강국으로 부상하며 해양 세력으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초기 국호는 '진국(震國)'이었으나, 713년 당나라로부터 '발해(渤海)'라는 국호를 정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발해라는 명칭은 현재의 발해만(渤海灣)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발해가 해양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이 시기 발해는 동해와 황해를 잇는 해상 무역로를 장악하며 해상 강국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발해의 초기 영토는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 북부 지역을 아우르는 광활한 영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발해가 내륙의 농경 문화와 해양의 교역 문화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발해만과 동해를 접한 연안 지역에서는 해상 교역을 위한 항구와 조선소가 발달했으며, 이를 통해 당나라, 일본, 신라와의 해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해상 방어와 교역에 필요한 함대를 구축했으며, 대조영은 해상 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군력 강화에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발해가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자주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동북아시아의 해상 질서에서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건국 배경
668년 고구려 멸망 후 30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연합
지리적 이점
만주, 연해주,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와 해안선 확보
국호 변경
진국(震國)에서 713년 발해(渤海)로 변경, 해양 국가로서의 정체성 강화
발해의 건국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해상 질서 재편을 의미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의 해양 지향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말갈족의 해상 활동 경험을 접목시켜 독자적인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후대 발해가 동북아시아의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서 고구려의 문화적, 정치적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2. 발해의 지리적 위치와 해상 교통망
발해는 현재의 중국 동북 3성,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이 영토는 동쪽으로는 동해(일본해)를, 서쪽으로는 발해만을 접하고 있어 천혜의 해양 접근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로 둘러싸인 발해만과 황해, 그리고 동해를 통한 해상 교역 루트는 발해가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상경용천부
발해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해상 무역의 총괄 관리 역할
동경용원부
동해안의 주요 항구 도시로 일본과의 교역 중심지
남경남해부
황해에 인접한 항구로 당나라, 신라와의 교역 창구
북경현덕부
북방 무역로 관리 및 북방 이민족과의 교역 담당
중경현덕부
내륙 지역 통제 및 발해만 방면 해상 교역로 보호
발해는 수도 상경용천부를 중심으로 5도 15부 62주의 체계적인 지방 행정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중 동경용원부와 남경남해부는 주요 해상 교역 항구였으며, 특히 동경용원부는 일본과의 교역을, 남경남해부는 당나라 및 신라와의 교역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지방 행정체계는 해상 무역의 효율적 관리와 함께 내륙 지역의 자원을 해안 지역으로 운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발해의 해상 교통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과 연결되는 동쪽 루트, 둘째, 황해를 건너 당나라와 연결되는 서쪽 루트, 셋째,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신라와 연결되는 남쪽 루트입니다. 이 중 동쪽 루트는 특히 중요했는데, 발해는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외교적 카드로 활용했습니다.
발해의 항구 도시들은 단순한 교역의 장소를 넘어 해양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통해 발해는 동아시아의 최신 문물과 기술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나라의 선진 항해 기술과 조선 기술이 발해에 도입되면서 발해의 해상 역량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발해의 지리적 위치와 해상 교통망은 단순히 무역 경로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네트워크였습니다. 발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해상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으며, 동북아시아의 해상 질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 교역 대상국 | 주요 수출품 | 주요 수입품 | 교역 항로 |
| 당나라 | 모피, 인삼, 말, 수산물 | 비단, 도자기, 금속제품 | 발해만-황해 루트 |
| 일본 | 모피, 금, 말, 인삼 | 칼, 거울, 직물, 서적 | 동해 횡단 루트 |
| 신라 | 모피, 말, 약재 | 농산물, 공예품, 철기 | 동해안 연안 루트 |
# 3. 대조영과 무왕: 해상 세력 확장의 주역

"동해의 파도를 다스리고 만주의 땅을 지배하니, 고구려의 혼이 다시 일어났도다."
- 발해 무왕 시기 기록에서 대조영을 칭송한 구절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는 건국자 대조영과 그의 아들 대무예(무왕)의 선견지명과 전략적 리더십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대조영(大祚榮, ?~719)은 고구려 출신의 장군으로, 고구려 멸망 후 말갈족과 연합하여 발해를 건국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내륙 국가가 아닌 해상 교역로를 확보한 해양 세력으로 발해를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대조영은 재위 기간(698~719) 동안 동해와 황해의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는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실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특히 일본과의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동해를 가로지르는 해상 루트를 개척했습니다.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 재위 719~737)은 아버지의 해상 전략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무왕은 특히 해상 무역과 군사력 강화에 집중했으며, 체계적인 해상 방어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당나라의 해안 지역을 공격하여 발해의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이를 통해 당나라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무왕 시기 발해는 해군력을 크게 증강시켰습니다. 전통적인 고구려의 조선 기술과 말갈족의 해상 경험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함선을 개발했으며, 동해와 황해에서의 해상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발해의 '거북선'으로 알려진 장갑함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해상 전투 기술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698년
대조영이 진국(후의 발해) 건국, 해상 교역로 확보 시작
713년
국호를 '발해'로 변경, 당나라와의 공식 외교 관계 수립
719년
대조영 사망, 아들 대무예(무왕) 즉위
721년
무왕의 당나라 연안 공격, 해상 군사력 과시
727년
일본과의 공식 해상 교역로 확립
732년
발해 함대, 동해 북부 해역 완전 장악
737년
무왕 사망, 발해 해상 세력 전성기 돌입
무왕은 또한 해상 무역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항구와 해안 지역에 방어 시설을 구축했습니다. 동경용원부와 남경남해부에는 대규모 항만 시설과 함께 해적과 외부 침입에 대비한 방어 시설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러한 인프라 구축은 발해의 해상 무역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대조영과 무왕의 해상 전략은 발해가 동북아시아에서 주요 해상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리더십 아래 발해는 당나라, 일본, 신라와의 해상 교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안보를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는 이후 발해 역사 전체를 통해 유지되었으며, 발해가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4. 발해의 해상 무역과 경제 번영
발해는 동북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북방 관문 역할을 담당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당나라, 일본, 신라와의 활발한 교역은 발해 경제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발해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동해와 황해를 연결하는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수출 품목
- 모피류: 검은담비, 수달, 여우, 호랑이 가죽
- 약재: 인삼, 녹용, 웅담, 자하거
- 해산물: 건조 생선, 소금에 절인 해산물, 진주
- 광물: 금, 은, 철광석
- 특산품: 말, 매, 화살촉, 활
수입 품목
- 당나라: 비단, 도자기, 차, 서적, 약재
- 일본: 칼, 거울, 장신구, 칠기
- 신라: 면직물, 청자, 농산물, 공예품
- 서역: 향신료, 보석, 유리제품
무역 거점
- 동경용원부: 일본과의 무역 중심지
- 남경남해부: 당나라, 신라와의 교역 중심
- 상경용천부: 무역 통제 및 관세 관리
- 연안 항구도시: 수산물 가공 및 교역
발해의 해상 무역은 크게 공식 무역과 민간 무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식 무역은 조공 및 답례품 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국가 간 외교 관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민간 무역은 발해 상인들이 주도하여 다양한 물품을 교역하는 형태였습니다. 특히 '장문회(張文會)'와 같은 발해의 유명한 상인들은 당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발해의 여성 상인들도 해상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입니다. '홍라녀(紅蘿女)'라는 여성 상인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발해와 일본 사이의 문화 교류에도 기여했습니다. 이는 당시 발해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 활동 범위가 상당히 넓었음을 시사합니다.
발해의 해상 무역은 단순한 물품 교환을 넘어 화폐 경제의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발해는 자체 화폐를 주조하지는 않았지만, 당나라의 동전이 널리 유통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물품화폐도 사용되었습니다. 해상 무역의 발달은 발해 내에서 상업과 금융 시스템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는 발해 경제의 다각화와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해상 무역을 통한 경제적 번영은 발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항구 도시들은 국제적인 문화가 융합되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며, 해외 문물의 유입은 발해의 예술과 기술 발전에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해상 무역으로 얻은 부는 발해의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도 기여했습니다.
발해의 해상 무역 네트워크는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물질적인 교역과 함께 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사상과 예술, 기술, 의학 지식도 함께 전파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발해는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다양성과 융합에 기여했으며, 고유한 발해 문화의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5. 발해의 해군과 군사 전략
발해는 해상 강국으로서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국가의 안보와 해상 무역로 보호에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발해의 해군은 고구려의 해상 전통과 말갈족의 해양 경험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해상 군사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발해의 해군은 주로 세 가지 주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해상 교역로 보호, 해안 방어, 그리고 필요시 공세적 해상 작전 수행이었습니다.
발해 해군의 주력 함선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대형 전투함인 '거선(巨船)'은 주로 해상 전투에 사용되었으며 수백 명의 병사와 무기를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중형 함선인 '주선(舟船)'은 해안 순찰과 신속한 기동 작전에 활용되었습니다. 셋째, 소형 함선인 '삼판(三板)'은 정찰과 메시지 전달에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발해의 '장갑선(裝甲船)'으로, 이는 금속 판으로 선체를 보강한 함선으로 고려의 거북선의 선구적 형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함대 편성
거선(대형함)을 중심으로 주선(중형함)과 삼판(소형함)을 조합한 유연한 함대 구성
해상 전술
기동성과 속도를 활용한 타격 후 철수 전술, 적 함대 분산 후 개별 격파
해안 방어
주요 항구와 해안선에 감시탑과 요새 구축, 신호 체계를 통한 빠른 대응
해상 무기
화공 무기, 투석기, 장거리 활, 노를 이용한 충각전 등 다양한 전투 기술 활용

발해의 주요 해전
- 732년 동해 해전: 당나라 함대 격퇴
- 750년 황해 해전: 신라 선단과의 충돌
- 820년 발해만 방어전: 북방 해적 격퇴
- 858년 연해주 해전: 흑수말갈 침입 저지
발해의 해상 전략은 크게 방어적 측면과 공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어적 측면에서 발해는 주요 항구와 해안선을 따라 감시탑과 요새를 구축하고, 연안에 함대를 배치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특히 동경용원부와 남경남해부는 강력한 해안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는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북방 해적들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저지했습니다.
공세적 측면에서 발해는 해상 무역로를 확보하고 적대적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때로는 적극적인 해상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무왕 시기에는 당나라의 산동반도 연안을 공격하여 발해의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이는 당나라가 발해를 대등한 외교 상대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발해의 해군은 또한 해상 무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발해 함대는 동해와 황해의 주요 무역로를 순찰하며 해적과 불법 무역선을 단속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발해의 해상 무역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이는 발해 경제의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발해의 해군력은 국제 관계에서도 중요한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발해는 당나라, 신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는 발해가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발해와 일본의 관계에서 발해의 해군력은 양국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발해의 해군과 군사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 목적을 넘어 국가의 정체성과 위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는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발해의 정치적, 문화적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 6. 발해 문화 속 해양의 영향
발해는 내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해양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해양 문화는 건축, 공예, 종교, 예술 등 발해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해양 요소가 발해의 건축과 장식 예술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발해의 건축물에서는 해양 모티프가 자주 발견됩니다. 특히 용, 물고기, 파도와 같은 해양 상징물이 궁전, 사원, 귀족 주택의 장식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상경용천부 궁전 유적에서 발견된 용머리 기단 장식은 발해 건축에서 해양 상징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용 모티프는 왕권의 상징임과 동시에 바다와 물을 다스리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건축과 장식
- 궁전과 사원의 용머리 기단 장식
- 파도와 물고기 문양의 기와
- 선박 형태를 본뜬 건물 구조
- 해양 생물 모티프의 벽화와 조각
공예품
- 조개껍질을 이용한 장신구
- 해양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 물고기와 해양 생물 형태의 청동기
- 진주와 산호를 활용한 귀족 장신구
종교와 신앙
- 용왕신앙과 해신 숭배
- 해양 요소가 가미된 불교 의례
-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
- 해안 지역의 샤머니즘 전통
음악과 무용
- 파도 소리를 모방한 음악 기법
- 어부와 선원의 노동요
- 해양 생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무용
- 항해와 어로 활동을 묘사한 민속 춤
발해의 공예품에서도 해양의 영향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조개껍질, 진주, 산호 등 해양 자원을 활용한 장신구와 장식품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도자기와 금속 공예품에는 해양 생물과 파도 문양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특히 발해의 귀족층은 해외 교역을 통해 들어온 이국적인 해양 장식품을 선호했으며, 이는 발해 상류층의 국제적 취향을 보여줍니다.
종교와 신앙 측면에서도 해양의 영향은 중요했습니다. 발해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해상 무역과 함께 전파되었으며, 이들 종교는 기존의 해양 신앙과 융합되어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용왕신앙과 같은 해신 숭배는 발해의 해안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는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발해의 사원과 사찰에서 발견되는 용과 바다 관련 장식은 이러한 종교적 융합의 증거입니다.
발해의 음악과 무용에서도 해양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서 발견된 악기와 문헌 기록에 따르면, 발해에는 파도 소리를 모방한 음악과 해양 생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무용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어부와 선원들의 노동요는 발해의 해안 지역에서 널리 불렸으며, 이는 발해 민중의 일상과 해양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발해의 궁전에서는 파도 소리를 닮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바다 생물의 움직임을 본뜬 춤이 추어졌다. 그들의 건축물에는 용과 물고기가 새겨져 있으며, 귀족들은 진주와 산호로 장식된 의복을 즐겨 입었다."
- 당나라 사신의 발해 방문 기록 중에서
발해의 해양 문화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해상 교역과 국제 교류를 통해 새로운 해양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발해가 단순한 내륙 국가가 아닌 해상 강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동북아시아 문화사에서 발해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 7. 발해의 멸망과 해상 유산의 계승

발해 멸망의 해양사적 의미
발해의 멸망은 단순한 한 국가의 소멸이 아닌 동북아시아 해상 질서의 재편을 의미했습니다. 발해가 통제하던 해상 교역로는 거란과 여진, 그리고 고려 사이에서 새롭게 분할되었으며, 이는 이후 동북아시아의 해상 패권 경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926년, 북방의 유목 민족인 거란(契丹)의 침략으로 발해는 228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거란은 발해를 정복한 후 그 영토를 '동단국(東丹國)'으로 개편했지만, 발해의 해상 무역망과 해군력은 상당 부분 붕괴되었습니다. 특히 동해 연안의 주요 항구들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발해가 구축한 해상 교역로의 일부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발해의 해상 유산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해 멸망 후 많은 발해 유민들이 고려와 주변 국가로 이주했으며, 이들은 발해의 해양 지식과 기술을 새로운 터전에 전파했습니다. 특히 고려로 망명한 발해 왕족과 귀족들은 고려의 해상 정책과 조선 기술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 유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해양 경험을 활용했습니다. 발해 출신의 해상 전문가들은 고려의 해군 건설과 해상 무역 확장에 기여했으며, 이는 후대 고려가 동아시아의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특히 발해의 함선 설계와 항해 기술은 고려 시대 '청해진'과 같은 해상 거점 구축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습니다.
926년
거란의 침략으로 발해 멸망, 동단국 설치
927-930년
발해 유민의 대규모 이주, 고려, 일본, 여진 지역으로 분산
935년
대광현(大光顯), 발해 부흥운동 전개하나 실패
936년
고려 태조, 발해 왕족 대씨(大氏) 가문 귀화 허용
10세기 중반
발해 해상 기술, 고려 해군 체계에 통합
11세기
발해 해상 무역로, 고려와 여진에 의해 부분적 복원
12세기
발해 해양 문화 요소, 고려 해양 문화에 완전히 흡수
발해의 해상 무역망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발해가 구축한 동해와 황해의 교역로는 이후 고려와 여진족, 그리고 일본에 의해 부분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 특히 발해와 일본 간의 교역로는 고려와 일본의 무역에 중요한 참고가 되었으며, 이는 동해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해상 교역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발해의 해양 문화 요소들도 주변 국가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발해의 선박 장식, 해양 모티프의 공예품, 그리고 해신 숭배와 같은 종교적 요소들은 고려와 여진, 그리고 일본의 문화에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고려의 청자에서 발견되는 파도와 물고기 문양은 발해 도자기의 해양 모티프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발해의 해상 유산이 계승된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지리적 지식과 항해 기술입니다. 발해 시대에 축적된 동해와 황해에 대한 지리적 지식은 고려와 여진, 그리고 일본의 항해사들에게 전해졌으며, 이는 이후 동북아시아의 해상 활동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특히 발해 시대에 개발된 천문 항법과 조류 예측 기술은 고려 시대 해상 활동의 중요한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발해의 멸망은 동북아시아 해상 질서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발해가 남긴 해상 유산은 다양한 형태로 주변 국가들에 계승되었습니다. 발해의 해양 지식과 기술, 무역망, 그리고 문화적 요소들은 고려와 여진,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해양 활동과 문화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동북아시아 해양사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 8. 발해 유적과 해양 문화의 현대적 가치
발해의 역사적 유적과 문화재는 동북아시아 해양 역사의 중요한 물질적 증거로서 현대에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지에 산재한 발해 유적들은 발해의 해상 활동과 문화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특히 상경용천부 유적, 가심사(佳心寺), 정효공주 무덤 등에서는 발해의 해양 교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경용천부 유적
중국 헤이룽장성에 위치한 발해의 수도 유적으로, 용 모티프와 해양 상징물이 풍부한 건축 장식 발견
가심사 유적
러시아 연해주에 위치한 사찰 유적으로, 해양 무역을 통해 전파된 불교 문화의 증거 제공
정효공주 무덤
중국 지린성에 위치한 왕실 무덤으로, 해외 교역품과 해양 모티프 장식품 다수 출토
동경용원부 항구 유적
북한 함경북도에 위치한 추정 항구 유적으로, 발해의 해상 무역 인프라 연구에 중요
해양 고고학의 발전과 함께 발해의 해상 활동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 진행된 수중 고고학 조사에서는 발해 시대의 선박 잔해와 무역품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발해의 해상 활동 범위와 기술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포시예트만(灣)에서 발견된 발해 시대 선박 부재는 발해의 조선 기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문헌 연구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되면서, 발해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발해는 내륙 국가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는 발해가 해상 무역과 해군력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해양 세력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발해 연구의 현대적 가치는 학술적 측면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각자의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발해를 해석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동북아시아의 역사 인식과 문화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보는 관점이 강하며, 이는 한민족의 해양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발해의 해양 문화 연구는 또한 현대 동북아시아의 해양 협력과 문화 교류에도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발해가 구축한 해상 네트워크와 다문화적 특성은 현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해양을 통한 평화적 협력과 문화 교류를 모색하는 데 역사적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발해의 다민족, 다문화적 특성은 현대 동북아시아의 다양성과 공존의 모델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발해 해양사 연구의 최근 동향
- 수중고고학을 통한 발해 선박 및 항만 시설 연구
- 발해-일본, 발해-당나라 교류 문헌의 재해석
- DNA 분석을 통한 발해인의 이주 경로 추적
- 환경고고학으로 본 발해의 해양 자원 활용
- 3D 모델링을 통한 발해 함선 복원 프로젝트
"발해는 단순한 역사적 사례를 넘어, 현대 동북아시아 해양 질서와 문화 교류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발해의 해양 유산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동북아시아 해양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 김용한, 《동북아시아 해양사 연구》 중에서
발해의 유적과 해양 문화는 또한 현대의 관광 및 문화 산업에도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발해의 해양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과 전시회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해양 역사와 문화 유산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발해의 해양 유산은 현대 해양 과학과 기술 연구에도 영감을 제공합니다. 발해가 개발한 항해 기술, 조선 기술, 해양 자원 활용 방식 등은 현대 해양 과학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해의 친환경적 해양 자원 활용 방식은 현대 해양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해양 자원 관리에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9. 발해 해상 강국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교훈

발해는 7세기 말부터 10세기 초까지 동북아시아에서 해상 강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교훈을 살펴보면, 발해는 단순한 역사적 사례를 넘어 현대 동북아시아 해양 질서와 문화 교류의 중요한 참고점이 됩니다.
첫째, 발해는 동아시아 해상 교역과 문화 교류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발해는 당나라, 일본, 신라 등과의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물자뿐만 아니라 사상, 종교, 기술, 예술 등 다양한 문화 요소의 교류를 촉진했습니다. 이러한 발해의 역할은 현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해양을 통한 문화 교류와 경제 협력을 모색하는 데 역사적 선례가 됩니다. 특히 현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간의 해양 협력과 문화 교류는 발해 시대의 네트워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발해는 다민족 국가로서 해양을 통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 사례입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그리고 다양한 북방 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진 다문화 국가였으며, 이들은 해양 무역과 문화 교류를 통해 공동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발해의 다문화적 특성은 현대 동북아시아의 민족 다양성과 문화적 공존에 중요한 역사적 참고가 됩니다. 특히 해양을 통한 문화 교류가 민족 간 갈등을 완화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은 현대 동북아시아의 평화 구축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해양 네트워크의 중요성
발해는 해상 무역로를 통해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다양성을 실현했으며, 이는 현대 동북아 국가들의 해양 협력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줍니다.
다문화 공존의 모델
고구려 유민, 말갈족, 기타 북방 민족들이 해양 문화를 중심으로 융합한 발해의 사례는 현대 다문화 사회의 통합과 공존에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해양 안보의 교훈
발해의 해상 방어 전략과 외교적 균형은 현대 동북아 해양 안보와 갈등 관리에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해양 환경과 지속가능성
발해의 해양 자원 활용과 관리 방식은 현대 해양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자원 이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셋째, 발해의 해양 전략은 오늘날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해양 전략과 안보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발해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 무역로를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확보했으며, 이는 해양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발해가 당나라, 신라,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해양력을 활용한 방식은 현대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의 해양 전략에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넷째, 발해의 해양 문화는 한민족의 해양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 역사에서 발해는 종종 간과되거나 내륙 중심적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으나,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는 한민족의 해양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풍부하게 합니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이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다 균형 있게 이해하고, 해양 국가로서의 잠재력을 재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발해의 환경 적응과 해양 자원 활용 방식은 현대 해양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발해는 동해와 황해의 다양한 해양 환경에 적응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양 자원을 활용했으며, 이는 현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해양 환경 보전과 경제 발전을 조화시키는 데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발해의 역사는 우리에게 해양이 단순한 장벽이 아닌 소통과 번영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발해가 보여준 것처럼 해양을 통한 평화로운 교류와 협력에 달려 있습니다."
- 박성수, 《동북아시아 해양 역사와 미래》 중에서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교훈은 단순한 학술적 관심을 넘어 현대 동북아시아의 지역 협력, 문화 교류, 해양 안보, 환경 보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실질적인 함의를 갖습니다. 발해의 해양 유산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평화롭고 번영하는 동북아시아 해양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0. 결론: 잊혀진 해상 강국 발해의 빛나는 유산
발해는 7세기 말부터 10세기 초까지 동북아시아에 존재했던 해상 강국으로,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해양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228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발해는 동해와 황해를 아우르는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당나라, 일본, 신라 등과 활발한 교역과 문화 교류를 펼쳤습니다. 이러한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면모는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와 발굴을 통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해상 무역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국제적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대조영과 무왕으로 대표되는 발해의 지도자들은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해상 전략을 추진했으며, 이를 통해 발해는 동북아시아의 주요 해상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발해의 해상 무역은 단순한 경제적 활동을 넘어 문화 교류와 외교의 중요한 채널이었으며, 이는 발해가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다양성과 융합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고구려 계승과 해상 국가 설립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합하여 해상 무역로를 장악한 국가 건설
해상 세력 확장과 번영
무왕 시기 해군력 강화와 해상 교역망 확대를 통한 경제적, 문화적 번영 달성
해양을 통한 문화 융합
해상 무역을 통한 불교, 유교, 도교 등 사상과 예술의 교류 및 독특한 해양 문화 발전
해상 유산의 계승
멸망 후에도 고려와 주변 국가들에 의해 계승된 해양 지식, 기술, 무역망, 문화적 요소
발해의 해양 문화는 건축, 공예,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해양 모티프가 풍부하게 사용된 발해의 건축과 공예품은 발해 문화에서 해양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발해는 해상 무역을 통해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수용하고 이를 기존의 해양 신앙과 융합시켜 독특한 종교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발해의 멸망 이후에도 그 해상 유산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고려와 주변 국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었습니다. 발해 유민들은 고려를 비롯한 주변 국가로 이주하여 발해의 해양 지식과 기술을 전파했으며, 발해가 구축한 해상 무역망은 부분적으로 고려와 여진, 일본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상 유산의 계승은 동북아시아 해양사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현대 동북아시아의 맥락에서 발해의 해상 강국으로서의 역사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발해가 보여준 해양을 통한 교류와 협력, 다문화적 공존, 해양 안보와 경제적 번영의 균형 등은 현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해양을 매개로 한 지역 협력과 평화 구축을 모색하는 데 역사적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게 발해의 해양 역사는 한민족의 해양 정체성과 잠재력을 재발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발해는 잊혀진 해상 강국이었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동북아시아의 바다와 문화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발해의 역사를 재발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지혜와 영감을 찾는 여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자로서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해상 강국으로서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발해의 해상 활동과 문화는 동북아시아의 해양 역사와 문화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는 현대 동북아시아의 해양 질서와 문화 이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발해의 잊혀진 해상 강국으로서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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